[강연원고] 대승불교의 정신과 대불연의 나아갈 길 - 강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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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휴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2,575회 작성일 08-06-20 16:48본문
대승불교의 정신과 대불연의 나아갈 길
대불연 공동대표 강동균
1. 불교(佛敎)란 무엇인가
불교란 글자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뜻이다. 동시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사바세계의 중생들은 각기 저마다의 지식과 상식으로 대상을 판단한다. 남의 말을 들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또 자기가 바라는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는 것은 부정해 버린다. 자기의 능력 이외의 것은 보이지도 않고 보고자 하지도 않는다.
불교는 그런 상식을 뒤집어 버린다. 그 대표적인 이론이 공(空)사상이다.
공사상이란 집착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국에서 중국불교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한국불교가 되었고, 일본에서는 일본불교가 되었다. 그것은 제각기 보는 눈이 다르고, 보이는 것이 다르고, 보고자 하는 바가 다르고, 볼 수 있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비롯된 현상이다.
부처님은 이런 것을 미리 아시고‘진실에 들고자 하거든 먼저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하라’고 하신 것이다.
결국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신 뜻은 모든 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위한 것이었다.
2. 대승불교란 무엇인가
대승불교란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불교 본래의 취지로 돌아가서 중생과 함께 생활하고 중생의 행복을 제시하고 마침내는 중생을 부처되게 하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중생은 부처될 수 없다. 왜 부처될 수 없는가?
사바세계의 중생들은 자기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업보 중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말법시대에 들어서서 깨달음을 추구할 수 없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부처될 수 없는 오탁(五濁)악세가 되어 내가 부처라고 외치는 가짜 부처만이 활보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부처될 수 있는 길, 성불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그것이 믿음의 길이다. 우러러 믿는 길이다. 그것을 원효스님은 앙신(仰信)이라고 하였다.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다양하게 전개 되었다. 그것을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반야경으로 대표되는 공(空)의 가르침, 일불승(一佛乘)으로 대표되는 <법화경>의 가르침, 웅장한 불국(佛國)화장세계(華藏世界)로 장엄된 <화엄경>의 가르침, 만인성불의 길을 제시한 <열반경>의 가르침, 중국에서 시작된 선불교(禪佛敎), 인도불교의 마지막에 형성된 밀교(密敎), 이런 모든 가르침에서 공통으로 추구되는 정토신앙(淨土信仰), 등등이다.
여기서 교상판석(敎相判釋)이 제시된 것이다. 교상판석이란 ‘선택’이란 뜻이다. 종교에서는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이 이론의 창시자는 인도의 용수보살이다.
용수는 그의 주저인 <중론송>의 귀경서에서 삼귀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길상한 법을 설하신 여래(如來)에게 귀의합니다.’이것이 삼귀의인 것이다. 그리고 성문, 연각은 패종(敗種)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법을 설하지 않는 부처와 중생구제를 외면한 출가비구들은 패종이라고 하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십주비바사론>에서 성불하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난행도요 다른 하나는 이행도라 하였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이야기이다.
신앙대상인 부처를 선택하되 보리수나무아래에서 깨달음을 여시고 그대로 열반에 드신 부처냐, 녹야원에 나아가 설법하신 여래냐고 용수는 물었고, 나아가 수행의 길을 지혜를 앞세운 난행도를 선택할 것인가 신앙을 앞세운 이행도를 선택할 것인가를 물었다.
3. 대승불교실천연합이 나아갈 길
1) 한국불교가 걸어 온 길
지금 왜 불교중흥이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왜 안 되는지는 한국불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결론이 나온다.
한반도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 년(372)에 전진의 왕 부견이 중 순도와 불경, 불상을 보내와서 시작되었다. 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광개토왕이 고구려에 아홉 개의 대찰을 준공하고 내린 칙령이 숭불구복(崇佛求福)이었다. 부처를 숭상하여 복을 구하라는 것이었다. 뒤에 고구려는 도교를 받아들여 불교를 외면하였다.
백제에는 침류왕 원년에 동진에서 호승(胡僧) 마라난타가 와서 불교를 전래하였다. 그 후 성왕대에 겸익이 인도에서 돌아와서 계율에 관한 경전을 번역하여 백제불교는 계율을 중시하였다.
신라는 우여곡절 끝에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법흥왕 17년(528)에 불교가 공인되었다. 신라불교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지혜를 숭상한 불교와 자비를 숭상한 불교이다.
지혜 - 계율 - 선택된 사람 - 인간중심주의 - 왜곡된 이기주의 - 귀족불교
자비 - 신앙 - 모든 사람 - 인간존중주의 - 자리이타의 실천 - 민중불교
지혜 - 자장 - 경흥 - 의적 - 진표 - 명랑 - 도의 - 도선
자비 - 원광 - 혜숙ㆍ혜공 - 원효 - 사복 - 광덕ㆍ엄장
원효는 신라의 정신적 지주로서 황룡사에 주석함을 부정하고 하산했다. 그것은 자비 보살의 자각이었다. 45 세에 중국행을 단념하고 서라벌에서 자유로이 행각하였으며, 이때 요석공주와의 로맨스도 이루어졌고, 스스로 복성(卜性)거사라 칭하며 방방곡곡을 누비며 ‘나무아미타불’을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때부터 신라에는 미타신앙이 민중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통일신라 중기와 말기에 전래된 밀교와 선종은 다시 귀족불교로 환원되었고 믿음이 배제된 깨달음의 불교만이 고려불교를 타락시켰다.
내가 부처라고 소리치지만 자기가 부처 아닌 것은 누구보다도 자기가 제일 잘 안다. 그래서 기도와 재가 성행하였으며, 대리 신앙이 성립하여 차츰 주술종교로 바뀌어 버렸다. 원효가 이루어 놓은 보편신앙이 주술신앙으로 타락하였다. 그리고 중생을 외면하였다. 고려시대는 불교가 중생을 외면한 암흑기였으며, 이기주의와 사대사상이 판을 치고 나라의 멸망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중생을 외면한 불교는 혹독한 대가를 치루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을 맞이했어도 불교계는 한 치의 반성도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대불연의 시대적 요청
믿음이 배제된 깨달음의 종교가 불교라고 현대 한국불교는 강조하고 있다. 중생구제는 외면하고 있다. 깨달음은 곧 ‘나의 깨달음’이며 나 아닌 다른 중생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기주의이다. ‘나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이기주의를 포기하고 나를 포함한 모든 중생의 구원을 추구하는 ‘구제의 불교’에 대하여 진지하게 직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렇게 부처님을 향한 믿음이 싹트게 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한 ‘선택’만이 필요한 것이다.
겸허하게 부처님을 향해 예배하고 찬탄하고 발원하고 관찰하고 모든 중생에게 공덕을 회향하는 마음이야말로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인 것이다. 이 길은 부처님이 가신 길이며 용수보살이 가신 길이며 담란대사가 가신 길이며 원효성사가 가신 길이며 이제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인 것이다.
구원의 가르침을 가장 간절하게 전해 주는 경전은 정토삼부경이다.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바로 아미타불인 것이다. 아미타 신앙만이 현대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근거이며 모든 중생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우리 모두 <장엄염불>을 되새겨 보자.
원아진생무별념(願我盡生無別念)
아미타불독상수(阿彌陀佛獨相隨)
원아임욕명종시(願我臨欲命終時)
진제일체제장애(盡除一切諸障礙)
면견피불아미타(面見彼佛阿彌陀)
즉득왕생안락찰(卽得往生安樂刹)
(불기 2552년 6 월 18일 부산시초량동 관음정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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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구님의 댓글
이영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강교수님 늦게들어와서 미안습니다.그날 참으로훌륭하신강의였습니다.바쁘시겟지만 우리대불련회원들을위해서 수시로좋은말씀해주시기바랍니다.정신일도 하사불성!!!